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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는 즐거움을 어떻게 멈추지? "중독"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7-15
조회 :
7845

출처 :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하지현, 2012.06.30, 도서출판 해냄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을 어떻게 멈추지?


중 독

"하루라도 널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해. 어떻게 하지? 너에게 중독된 것 같아. 책임져."

한참 분위기 좋은 닭살 커플들의 대화다. 술도 마약도 아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중독(addiction)이란 원래 의학 용어이지만, 지금은 흔히 사용하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사회 현상이 벌어졌을 때 사용하는 신드롬(syndrome)이라는 용어도 원래 질병(disorder)으로 정확히 진단하거나 원인을 규명하기 전에 증상, 징후, 다양한 특징을 뭉뚱그려 부르는 의학 용어다. 쇼핑 중독, 초콜릿 중독, 게임 중독 등 중독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흔히 사용하는 단어라도 의미와 개념을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이번에는 '중독'에 대해 알아보자.

중독의 본래 의미

중독은 '특정 행동이 건강과 사회생활에 해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집착적 강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정신 의학에서는 중독이라는 단어가 상용되면서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남용(abuse)'와 '의존(dependence)'으로 나누어 정의한다.

남용은 일상적인 양보다 많은 양의 물질을 섭취하고 그로 인해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콜라를 매일 한 병 정도 마신다면 남용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에 페트병 2개를 단번에 마시는 사람은 콜라를 남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통상적인 1인분의 몇 배를 한 번에 복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남용이다.

한편 의존에는 특징적인 증상이 있다. 먼저 '내성'이다.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양이 늘어나거나 물질 혹은 행동을 원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예전에는 진통제를 12시간 간격으로 1알만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았는데, 이제는 6시간 간격으로 2알은 먹어야 한다면 내성이 생겼다고 본다.

두 번째 증상은 제시간에 섭취하지 않으면 경험하는 심리적, 생리적 금단 증상이다. 생리적 금단 증상은 물질이 작용하던 생물학적 기전이 멈춰지면서 역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른함을 느끼게 하는 약물은 흥분과 초조 또는 불안을, 짜릿함을 주는 약물은 나른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금단 증상은 무척이나 괴롭기 때문에 끊거나 줄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다시 그 물질을 복용하게 만든다. 그래서 중독된 사람은 그것을 찾아 헤매고, 편안히 복용하거나 사용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이를 구갈(craving)이라고 한다.

점차 그 행동은 즐거움을 위한 일시적 여흥이 아니라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나 일상적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 행동 말고는 더 이상 재미있거나 성취감을 느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지각하거나, 게임하다가 밤을 새다가 학교에 가서 졸거나, 시험 전날인데도 여자 친구와 통화하느라 공부하지 못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보다 못해 주변에서 "좀 줄이는 것이 어때?"라고 충고한다. 처음에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조절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미 중독 단계에 접어든 사람은 쉽사리 끊지 못한다. 이제 그것 없이 사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나갈 때는 마음대로 못 나간다'는 깡패 집단의 논리가 여기에도 작용한다. 깡패 집단에 일단 들어가면 나가고 싶어도 나가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중독에서 벗어나려 할 때 보복하는 행동대장은 '금단'이다. 강렬한 금단 증상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는 벗어날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그 행동에 몸을 내맡기고 만다.

중독의 원리

도대체 무엇이 그리 좋아서 몇 번 만에 중독이 될까? 어떤 행동이 즐거움을 주면 그 행동을 반복하고 싶은 욕구가 강화된다. 이를 동기 강화라고 하는데, 이는 뇌 변연계(limbic system)1)의 중변연 도파민 시스템(mesolimbic dopaminergic system)의 보상 관련 학습으로 이루어진다. 해부학적으로는 배쪽 피개 구역(VTA, ventral tegmental area), 측위 신경핵(nucleus accumbens) 및 이 둘을 잇는 도파민 섬유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이곳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오면 강화는 더욱 강렬해진다.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 물질은 이곳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흥분감과 다행감을 느끼게 하고 행동의 강화를 부추긴다.

그런 물질이 아니더라도 도박해서 크게 땄을 때의 쾌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짜릿함,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질렀을 때' 경험하는 충만감도 뇌 신경 회로를 강화한다. 그래서 점차 그 행동에 중독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약, 술, 담배와 같이 몸 안에 들어가는 물질에 의해서만 중독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행위 중독'이라고 해서 도박 중독, 게임 중독과 같은 중독적인 행동 역시 신경계의 학습과 보상 기전은 비슷하리라고 본다.

일부 연구에서는 알코올이나 도박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감각 추구형(sensational seeking)' 기질이 강하다고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고, 위험한 일을 피하기보다는 직접 경험하기를 즐기며, 새로운 일을 시도한 후 실패해도 상처받지 않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이런 기질을 가진 이들은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므로 잠시도 따분함을 견디지 못하고 더 큰 자극을 찾아 헤맨다.

균형 잡힌 삶을 위한 중독

한 가지 일에 미친 듯이 매진하는 것도 중독이다. 중독의 보상 회로가 그 일을 할 때 기쁨을 경험하게 하면서 그 일을 반복하도록 더욱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중독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우선순위를 나눌 때 그 일 한 가지와 나머지로 확연히 갈린다.

한 가지 운동이나 취미를 시작하면 열중하는 것도 어찌 보면 '중독'이다. 일시적인 중독은 삶의 활력소가 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게끔 동기를 부여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즐거움이나 집착은 줄어들고, 일상생활에 새로운 취미나 운동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일부분을 차지한다. 이렇듯 삶이 균형을 되찾으며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독이란 시스템의 순기능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중독이란 치명적인 유혹이다. 그래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삶의 균형이 깨질 때까지 오직 '달리기'만 해서 후유증이 남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므로 유혹을 즐기며 삶의 원동력으로 삼되, 참고 절제할 수 있는 의지력이 필요하다. 유혹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공부에 중독'되었다고 해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 가지만 쌓이고 커지다 보면 어딘가는 비거나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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